캠퍼스 by 여름숲

서울대학교 출신 소설가의 소설을 읽었다. 80년대 학번의 현재와 과거가 교차로 진행되는 이야기, 이야기 속에 드러나는 캠퍼스가 무척 낯익다. 마침 친구들과 서울대입구에서 저녁 약속이 있었고, 낮 약속은 펑크났다.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소설을 읽다가 문득 학교에 가 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낙성대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기숙사 삼거리에서 내려 인문대와 중도를 거쳐 내려와 버스를 타고 서울대입구로 가면 시간이 딱 맞겠다.

합정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낙성대까지 가는 시간이 마치 과거로 가는 시간 같았다. 그 2호선에는 내 20대가 온전히 들어 있었다. 합정, 영등포구청, 신대방, 신림, 서울대입구, 낙성대. 어느 곳 하나 심상히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학교는 무척 많이 변했다. 낡은 기숙사는 거의 다 사라졌고, 높고 큰 기숙사가 들어섰다. 14동 옆에는 난데없이 폭포가 들어섰고, 8동에는 두산인문관이라는 으리으리한 건물이 들어섰다. 그 바람에 5,6,7동 사이 중정은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 버렸다. 해방터도 옹색해졌다. 자하연 식당과 3동 사이, 플라타너스 나무가 가득하던 곳도 인공적인 느낌이 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중도와 학관 쪽은 그나마 예전 느낌이 남아 있다. 워낙 큰 건물이라 그런지 좀스런 변화에는 별 영향을 안 받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 맥주 한 잔을 했기 때문인지, 노란 불빛이 반짝이는 한강 위를 지나갔기 때문인지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아무래도 낮에 소설을 읽다가 남은 센티멘털한 감성과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추억놀이를 했기 때문이겠지. 대학교 때 친구들과는 아직도 이렇게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데, 정작 그 시간에 가장 소중했던 사람에게는 연락조차 취할 수 없구나, 하는 깨달음. 지금이라도, 참 고마웠다고, 네가 있어서 내가 그 시간을 지나왔다고,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가 없다.




레가토
권여선 지음 
창비


by 여름숲

소풍 가고 싶다.
돗자리, 도시락, 잔디밭, 나무그늘, 몇 명의 사람들.
이런 게 어우러진 소풍.

노인들이 겨울이나 여름에 많이 죽을 것 같지만
의외로 봄에 많이 죽는다고 했다.
길고 추운 겨울을 용케 버티어 낸 노인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과 싱그럽게 돋아나는 나뭇잎은 견디질 못한다.
정신적으로 패배하는 것이다.
나, 좀 이해할 것 같다.
너무 아름다워서 못 견디겠다.


이러다 회사에서 짤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넋놓고 있다.


민심 by 여름숲

이민 가야겠다는 둥 한국 유권자 수준이 이 정도라는 둥, 
이런 얘기를 들으면 기분 나쁘다. 
자기들은 얼마나 잘나서? 
강원도경상도충청도의 시골 사람들이, 
쥐뿔 가진 것도 없는 사람들이 
왜 보수당을 지지하는지 이해해보려 한 적 있나? 
단순무식한 사람들의 지역주의라고 매도해버리면 속이 편할까?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트위터는 동호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브론치노, Christ in Limbo by 여름숲





이번 출장길에 피렌체에 들렀다가
산타크로체교회에서 브론치노의 그림을 보았다.
브론치노는 묘하게 기분 나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보고 완전히 생각을 바꿨다.



이어지는 내용

고양시 누리길 by 여름숲

어제는 고양시 누리길 중에서 행주누리길을 꽤 걷다가 말았다.
지지난주 일요일에는 그냥 답답해서 산책을 나섰다가 누리길 푯말을 보고 이거다 싶어서 쭉 따라가다가 어디에선가 길을 잘못 들어서 막 돌아다녔다. 반은 길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였고 정돈되지 않은 야산(살인의 추억 같은 걸 연상시키는 야산과 들길)에다가 마을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밖에 안 다니는 마을(동네 슈퍼에서 아저씨들이 술판 벌이는 그런 마을)까지 지나온 터라 무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엄청 스릴넘쳤다.
그래서 어제는 고양시가 지정한, 제대로 된 누리길을 걸어 보자 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다녔는데 영 별로였다. 배다리테마파크라는 이름부터가 수상한 공원(?)을 가로지르게 되어 있는 데다가 아파트 단지 사이로 난 청계천 같은 데를 한참 걸어가게 해놓았다. 지지난주에 걸었던 길과 비교하자니 가짜 개울, 가짜 길, 가짜 바닥인 게 너무 티나서 그냥 되돌아왔다. 그런 게 자랑이라고 누리길의 한 코스로 만들어놓은 것도 싫고, 도대체가 스릴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안정감도 지루했다.
다음주에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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