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런 적 있는데 by 여름숲

소설 속 인물이 예전의 내가 했던 것과 유사한 행동을 할 때 나는 너무 놀란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밤에 심부름을 갈 때면 꼭 후래쉬를 들고 나가야 했다. 후래쉬가 비추는 기다란 타원형의 빛을 따라 어두운 시골길을 가다가 괜히 풀숲을 비춰 보기도 하고, 무서워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아는 노래일 때도 있지만 내가 작사 작곡한 노래일 때가 많았다. 어떨 때는 가만히 멈춰 서서 후래쉬를 밤하늘 허공에 쏘아보기도 했다. 그건 별빛이 우리 눈에 보이는 건 별에서부터 출발한 빛이 이제야 이곳에 도착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학교에서 배운 뒤부터였다. 나는 후래쉬 불빛을 어두운 밤하늘에 비추면서, 비록 약하기 짝이 없는 빛이지만 언젠가 어느 별에서 이 빛을 보는 존재가 있을 거야,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때였다.
그런데 언젠가 김영하의 소설을 보다가 나랑 똑같은 짓을 하는 소년을 만난 것이다. 어찌나 놀랐는지.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 이 작가도 이런 적이 있는 걸까. 직접 해보지 않고서야 이런 상황을 떠올리기 힘든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조금 더 자란 뒤의 기억 중에는 이런 게 있다.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잠깐 보던 텔레비전에서는 <출발, 아침> 뭐 이런 류의 교양프로가 부지런히 흘러나왔다. 이 프로에는 서울시 교통상황을 흐릿한 씨씨티비 화질로 보여주는 코너가 포함돼 있었는데, 서울에 가본 적이 없는 나는 '어디 사거리'라던지 '어디 인터체인지'라는 말이 어쩐지 비현실적이고 낯설었다. 동도 트지 않은 어두운 도로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을 반짝이며 출근하는 차들. 언제나 정체 중인 사거리들.
그런데 최근에 나온 김미월 소설에 또 그런 소년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 고등학생 소년은 라디오 교통정보를 듣고 테헤란로라는 단어에 꽂힌다. 그래서 테헤란로가 있는 서울 소재의 대학에 진학하기를 꿈꾼다. (그리고 현재는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_- )
어쨌든 또 한 번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김미월 지음 / 창비

일정한 진폭 안에서 머뭇거린다는 인상. 그 조심스러움이 미더우면서도 고만고만하다는 인상도 남긴다. 어쨌든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살이 하는 젊은 세대들이 특히 공감할 이야기들.




산만하다 산만해 by 여름숲

어릴 때 나는 그리 산만한 아이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엄청 산만하다.
회사에서 일할 때도 집에서 책을 읽을 때도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 일쑤다.
아무래도 게임이니 트위터니 재미난 소일거리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내가 어릴 때는 지금만큼의 재미난 소일거리가 없었으므로,
즉 정신을 쏟아부을 만한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덜 산만한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내가 오늘날의 아이었다면 나는 공부를 하다가 게임을 하고,
독서를 하다가 남의 블로그나 트위터를 기웃거리며 시간을 다 보냈을 것이다.
그나마 놀거리가 부족한, 무료한 어린시절을 보낸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건 사랑이겠지 by 여름숲

자두나무 정류장
박성우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바닥
                    
                       박성우

괜찮아, 바닥을 보여줘도 괜찮아
나도 그대에게 바닥을 보여줄게, 악수
우린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위로하고 위로받았던가
그대의 바닥과 나의 바닥, 손바닥

괜찮아, 처음엔 다 서툴고 떨려
처음이 아니어서 능숙해도 괜찮아
그대와 나는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핥았던가
아, 달콤한 바닥이여, 혓바닥

괜찮아, 냄새가 나면 좀 어때
그대 바닥을 내밀어봐,
냄새나는 바닥을 내가 닦아줄게
그대와 내가 마주앉아 씻어주던 바닥, 발바닥

그래, 우리 몸엔 세 개의 바닥이 있지
손바닥과 혓바닥과 발바닥,
이 세 바닥을 죄 보여주고 감쌀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겠지,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겠지
 


경주 by 여름숲

경주에 다녀왔다.
진평왕릉과 장항리오층석탑, 그리고 남산이 좋았다.

진평왕릉에서 바라본 경주들판


남산에서 바라본 경주들판. 저 멀리 부처님도 보인다.



오늘의 주문 내역 by 여름숲

XYZ City
Workroom 편집부 엮음 
워크룸프레스(Workroom)



내가 나인 것

야마나카 히사시 지음
고바야시 요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사계절출판사




바쁜 와중에도, 읽지도 않을 거면서 새 책을 꾸역꾸역 산다.
오늘 산 책은 <내가 나인 것>과 <XYZ city>.
전자는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회사에도 없고 가격도 착하고 해서 주문했다.
나는 소년이 주인공인 책을 대체로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XYZ city>는 워크룸이라는 디자인스튜디오http://wkrm.kr를 검색해 보다가 알게 된 책.
자음과모음에서 나오는 하이브리드 총서 표지 디자인을 이곳에서 했다.
마음에 쏙 든다.
표지 디자인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책을 내기도 하는 모양인데
그중 전시도록으로 생각되는 <XYZ city>을 샀다.
도시, 공간, 건축, 사진, 이런 것들에 대한 건조한 시선을 좋아하는 편이므로.
좋아하는 필자 중 한 명인 이영준의 이름도 보여서 고민 없이 샀다.
그리고 추가로 플래너 하나.
맨날 후회하면서 또 산다. 그래서 싼 걸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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